첫 회사, 첫 인턴, 첫 해외출장의 설렘이란, 마치 소개팅을 준비하는데 소개팅 상대방이 매우 괜찮은 사람임을 이미 듣고 설레면서 준비하는 심정이었죠.
인도공항에 도착했음을 보여주는 시그니처 손 모양
하지만 인도 비행기에서 내린 늦은 새벽, 숙소로 가며 인도에 대한 설렘은 사라지고 있었어요. 빵빵거리는 차들과, 도로선이 없는, 도로선이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다니는 차들. 그전에 동남아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왔었다면 익숙했을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질서가 잡혀있는 나라만 다녀왔던 제게 인도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인도에 도착했고, 되돌릴 수 없었으니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지내기로 했어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어요. 사방에서 영어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무실에서 저는 멀뚱히 앉아서 노트북을 켰어요. 그리고 저의 사수인 리서치 담당자분께 인사를 하고 일을 받기를 기다렸죠.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저는 일을 받지 못했답니다. 사수는 본인의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고, 다른 사람들도 지난밤 밀린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어요.
나는 진짜 일을 잘할 수 있는데! 왜 나에게 일을 안 주는 거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인도는 한국보다 시간이 늦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출근하면 한국은 이미 출근해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요청한 일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면 오전은 정말 정말 바쁘더라고요. 심심해하며 일을 달라고 하는 제게 다른 분이 리서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일을 주셨어요. 바로 인도의 언어 수준을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다양한 인도의 언어들 (출처: 코인디아의 잘디잘디 뉴스, https://korindia.com/news/55870)
인도는 약 15개 이상의 언어가 있는 국가예요. 땅이 넓다 보니 우리나라의 사투리 수준을 넘어서서 지역별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죠. 게다가 인도는 빈부격차가 크다 보니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문맹이 많은 국가예요. 생활을 하기 때문에 말을 통한 의사소통은 되지만 글을 통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희 앱은 영어를 사용했는데, 우리의 고객인 인도인들 중 문맹이 많다면 영어 사용이 앱의 리텐션을 낮출 수 있다는 가설이 생긴 거죠.
따라서 해당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리서치에 나섰어요. 당시 회사는 뉴델리에 있었는데, 가까운 역에 가서 우리의 퍼소나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양한 언어를 적힌 글자를 보여주며 리서치를 했어요. 40도의 땡볕 아래서 3시간에 걸쳐서 약 20명 정도 리서치를 했던 것 같아요.
리서치를 하며 예상보다 더 인도인들의 문맹이 심각하다고 느꼈는데, 기본 단어라고 할 수 있는 Check, Push 등을 모르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됐어요. 한국과는 달리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를 겪으며 영어가 생활에 많이 녹아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어 문맹률이 높았고, 힌디어 단어들도 비슷하게 문맹률이 높았어요. 해당 내용을 전사 회의에 공유했고, 첫 리서치를 하며 스스로 뿌듯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몇 차례 인도에서 리서치를 하고, 예정된 출장 기간인 2달 중 1달이 지났을 무렵에 한국으로 귀국했어요. 인도에서 진행해야만 하는 필드 리서치는 대략 끝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굳이 인도에 있을 필요가 없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 사무실에서 리서치 업무를 담당하며 옆자리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나도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제 인턴계약기간은 2 달이었고, 제 인턴기간은 1달이 채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어요. 하지만 전략기획일을 해보고 싶었고, 다른 곳에서 다시 기획을 경험하느니, 여기서 경험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첫 회사였고, 프로세스나 보고체계에 익숙하지 않던 저는 바로 실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저 인턴 4개월 연장하고 싶어요, 전략기획 직무로요
이렇게 저의 전략기획 업무는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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